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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인 독서칼럼에 『너의 표정』이 소개되었습니다.

글문화연구소 소장이자 『글자 풍경』의 저자 유지원 작가가 독서인에 박찬욱 감독 사진집 『너의 표정』에 대한 칼럼을 써 주셨습니다. "사진을 감싸는 책의 몸"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집의 디자인과 종이, 그리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셨는데요. 칼럼 전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it.ly/3HAw0na



사진을 감상한다는 것과 사진책을 감상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책의 경험은 또다른 총체적인 감각의 경험이다. 사진이 책이라는 미디어를 만나고, 또 사진과 사진이 양쪽 페이지에 나란히 놓이는 편집의 흐름이 생기면, 그 병치된 관계들 속에서 새로운 맥락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 관계들을 종이 뭉치가 감싸고 그 육신 전체가 독서를 둘러싸면서, 독자가 처한 주관적인 공간의 촉감도 시간의 성질도 바뀌어간다.

사진으로 엮은 책은 ‘사진집’이라 해서 ‘집’이란 이름을 가지지만, 책은 사진에게도 독자에게도 옷과 집의 성격을 모두 갖는다. 몸이 직접 닿고, 공기로 감싸진다. 종이는 벽보다는 섬유의 성격에 가깝다. 이 책에 사용된 본문 종이는 이탈리아 수입지인 아코프린트 170g/㎡이다. 종이 본연의 성격을 간직한 모조지와 얼핏 비슷하지만 감촉과 발색이 더 진중하다. 큼직한 판형의 두툼한 종이는 소리가 낮은 모직 같다. 종이 역시 감각 정보다. 문자도 이미지도 아니더라도, 종이와 같은 경험들이 모두 책이 제공하는 ‘파라텍스트’가 된다.

이런 종이를 넘기는 시간은 느긋하게 흐른다. 책의 육신은 두터운 말없음에 동참한다. 종이는 잉크로 찍힌 사진이라는 정보를 재현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겹겹이 보호하며 감싼다. 책장을 넘기는 공기의 흐름을 일으킨다. 책이 펼쳐지면 기이한 생명력이 불쑥 웅성인다.  여기서 흐르는 시간은 매끈하지 않은 표면만큼이나 묵직해져 있다. 잠재된 이야깃거리들은 뭉쳐져 되직한 농도를 얻는다. 시간은 마치 점성이 높아 유속이 느려진 물질 같은 질감을 갖는다. 이런 시간의 표정이 독자의 독서를 느리게 감싸며 독자에게 책의 기억으로 남겨진다. 숨 밭은 일상 속에서 모처럼 호흡을 깊게 하면서도 적당한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기분 좋게 감도 높고 각성된 느림을 기억의 인장으로 남긴다.

_ [유지원의 글줄 사이로 路] 사진을 감싸는 책의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