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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교토의 1만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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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교토의 1만 년

  • 지은이: 정재정
  • 옮긴이:
  • 분야: 역사
  • 발행일: 2016년 08월 30일
  • 페이지: 504
  • 판형: 신국판
  • 정가: 18,000원
  • ISBN: 978-89-324-7339-0
  • 도서선정: MBC뉴스, 조선일보, 한겨레 등

 한 권으로 읽는 한일 관계사 & 일본사  

 

여행에서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다.”

     훑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라! 

서울과 교토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한일 관계사 전문가가 들려주는 깊이 있고 균형 잡힌 이야기가 당신의 시야를 넓혀 준다. 일본, 이제 알고 떠나자!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두 나라가 육지로 연결돼 있던 약 6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해가 호수였던 시절부터 이어진 사이니 보통 관계는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한일전만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앙숙 같은 사이가 돼 버렸을까.

곧바로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가 떠오른다. 임진왜란은 역사상 최악의 침략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아무런 명분 없이 쳐들어와 조선의 문물을 마구 약탈했는데, 여섯 개의 특수 부대까지 편성한 조직적인 약탈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은 승리의 증거로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본국으로 보냈기에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다. 일제강점기는 그 깊은 상처와 갈등이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해결되지 않고 있기에 더 말하지는 않겠다. 그런 일본이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가난에 쪼들릴 때 한국 전쟁 특수로 경제 회복을 넘어 경제 부흥을 이루게 됐으니 관계가 꽤나 복잡 미묘하긴 하다. 문명 전달의 관계 전환, 침략전쟁, 그럼에도 다시 시작한 교역…….

 

일본인의 마음의 도시이자 1천 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문화 중심지 교토를 통해서 본 일본과 한국 

 

이러한 관계 변화의 한가운데에 교토가 있었다. 천 년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곳곳에 유적과 유물이 있는,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선진 문물을 일본에 전파한 도래인(이주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조를 단행했던 곳이며, 윤동주와 정지용 등 우리 유학생들의 애환이 어린 곳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노동자로 동원된 뒤 일본에 잔류한 재일동포 집단 거주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한일관계사의 권위자인 정재정 교수가 교토의 곳곳을 다니며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더듬은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고 그곳 학자들과 교류하며 한일 관계사를 연구한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은 받아들인 것을 한 번 쓰고 내버리는 설사 문화,

일본은 받아들인 것을 꼭꼭 쌓아 두고 우려먹는 변비 문화?!

 

이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나라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어떻게 다른 문화를 형성하게 됐는지 그 배경과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왜 교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을까?

 

- 교토는 백제, 신라, 가야, 고구려 등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으로, 그들이 일본 문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 무가와 천황 간 정권 교체의 중심에 있었기에 이 정권 교체가 일본과 이웃 나라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보여 준다. 또한 교토는 수도의 지위를 잃고도 거듭 변신을 꾀하며 발전해 왔는데, 이를 위한 교토시민의 다양한 노력을 볼 수 있다.

- 역사적인 사건이 많이 벌어졌던 곳이며, 세력가들이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고 싶을 때 이곳에 건축물을 지었기 때문에 역사의 흔적이 담긴 유적·유물이 많다. ‘교토에서는 발에 차이는 게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 임진왜란의 시작점이기에 우리와는 악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은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다 묻은 이총과 순종황제를 황제 자리에서 쫓아낸 장본인인 메이지 천황의 묘가 있는 곳으로, 순종황제는 그 묘를 참배하는 능욕까지 겪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윤동주, 송몽규, 정지용 등이 유학했고, 많은 한국인 노동자가 일했던 곳이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살았던 한국인들의 활동과 행적을 읽을 수 있다.

- 지금도 시내에 1,600여 개의 사원과 400여 개의 신사가 성업하고 있는 곳으로, 일본의 독특한 종교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말
한국과 일본의 시대구분

들어가기 전에 | 교토의 역사와 한일 교류
역사의 켜가 쌓인 교토 | 교토의 풍수지리 | 교토 문명의 탄생 | 헤이안쿄의 공간 구조와 시설 배치 | 무가의 도시가 된 교토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 | 도쿠가와 막부가 이끈 교토 부흥 | 번영을 되찾은 교토 | 교토에서 찾는 한일 교류의 궤적

1 고대 | 교토의 시작과 도래인의 역할
1. 한국 문화의 일본 전파
문명의 교류와 인간의 이동 | 교류의 기원과 한국의 역할 | 빗살무늬토기와 조몬토기 | 벼농사의 전파와 야요이 문화 | 국가의 형성, ‘왜, 야마토, 일본’ |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 일본을 바꾼 도래 문화 | 통일 신라·발해와 일본의 교류 | 일본과 중국의 교류 | 일본 고대 문명에 대한 바른 시각 | 한일의 문명 전환과 교토
2. 교토를 개척한 도래인 집단
도래인의 물결과 그들의 활약 | 하타 씨의 가쓰라 지역 개척 | 고류지의 쌍둥이 미륵반가사유상 | 가쓰라 본궁에 깃든 하타노 가와카쓰와 쇼토쿠 태자의 일화 | 백제계 도래인이 창건한 기요미즈데라 | 일본 신앙의 원조가 된 도래인
3. 교토에 살아 있는 백제와 신라의 숨결
백제 왕실의 인척, 천황가 | 무역 제국 신라의 위대한 흔적 | 고승 엔닌과 무역왕 장보고 | 신라선신당과 무장 미나모토노 요시미쓰

2 중세 | 무가의 득세와 선종의 융성
1. 무사의 시대, 교토의 변신
헤이안쿄에서 교토로 | 율령제를 대신한 장원공령제 | 전국적 무가 정권, 가마쿠라 막부 설치
2. 무로마치 막부와 선종 문화
무가의 권력 다툼에 멍든 교토 | 선종의 유행과 쇼코쿠지 | 긴카쿠지와 난젠지의 일본식 정원
3. 나라와 시대를 뛰어넘은 고승의 존경과 공감
고잔지와 묘에 스님 | 의상과 원효대사가 주인공인 두루마리 그림 | 의상대사를 향한 선묘 낭자의 연정 | 의상대사를 본받으려 한 묘에 스님

3 근세 | 교토의 개조와 교류의 확대
1. 통일 전쟁의 중심이 된 교토
오다 노부나가의 사라진 꿈 | 교토를 개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2. 교토에 배어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욕
사치를 탐한 히데요시의 호화찬란한 저택, 주라쿠다이 | 임진왜란을 예고한 조선 통신사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만남 | 도요토미 가의 멸망을 부른, 호코지 동종의 명문 | 한때 정치와 외교의 무대였던 후시미 성 | 히데요시가 벚꽃놀이를 즐긴 다이고지 | 히데요시와 센노 리큐의 비극적 교유
3. 임진왜란과 교토
최악의 침략 전쟁, 임진왜란의 발원지 교토 | 조선인의 원혼이 떠도는 이총 | 노예로 팔리거나 학대당한 조선인들 | 교토에서 유학을 가르친 조선의 학자들 | 계획적인 조선 문물 약탈과 보전 | 조선의 꽃나무까지 파 간 일본군 | 메이지 정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영웅으로 부활시키다
4. 지략과 간계가 뒤엉킨 임진왜란 강화 회담
험난한 임진왜란 전후 처리 | 강화회담의 물꼬를 튼 송운대사 | 쓰시마 번의 조일 강화 중개 | 일본의 전문 외교관, 조선수문직 | 송운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시미 성 담판 | 서로를 알아 가는 한일 역사 기행
5. 실리를 위해 대결 구도를 피한 사절 외교
조선의 강화 조건과 쓰시마 번의 책략 | 궁리 끝에 보낸 외교 사절, 회답겸쇄환사 | 임진왜란의 전후 처리가 주는 교훈 | 지쇼인에 남은 조선 통신사의 흔적 | 장군은 일본 국왕인가, 일본국 대군인가 | 통신사 외교, 신의 속의 자존심 대결 | 통신사의 여정과 교유 | 통신사 외교의 변질과 종말 | 통신사 부활이 만든 지역 간 교류의 촉진과 세계기록유산 등록
6. 비단·인삼·은화의 3국 교역과 교토의 번영
조일 무역의 창구, 왜관 | 교토의 젖줄이 된 다카세가와 운하 | 무역의 결제 수단이 된 일본의 은화 | 교토의 비단과 염색 | 3국 무역의 최고 인기 상품, 조선 인삼 | 중계무역의 쇠퇴와 갈림길에 놓인 조선 | 외교 방식의 개편으로 궁지에 몰린 쓰시마 번

4 근대 1 | 메이지 유신과 재생을 위한 교토의 노력
1. 혁명의 도시가 된 교토
교토, 혁명의 도가니에 빠지다 | 조슈 군과 사쓰마 군의 전투, 불타 버린 교토 | 모반과 암살의 무대, 교토에 남은 유신의 사적들 | 메이지 유신 단행과 국가 개조 | 일본 애국의 성지, 료젠 묘역
2. 위기를 기회로 바꾼 교토의 저력
수도 이전이 가져온 교토의 위기 | 교토 부활의 바탕이 된 소수사업 | 교토의 저력을 과시한 정도(定都) 1,100년 기념사업 | 교토에 활력을 불어넣은 교토의 기발한 기획 - 영화, 춤, 벚꽃, 시장, 교육

4 근대 2 | 일본의 한국 지배와 한국인의 고투
1. 국제 정세의 변화와 일본의 한국 강점
러일의 대립과 광무개혁의 좌절 | 강요된 협약 체결에 의한 대한제국 폐멸 | 합법을 가장한 병합 조약
2. 교토에 건재한 한국 침략의 유적
근대 일본의 상징 메이지 천황의 무덤 | 충신의 아이콘이 된 노기 마레스케 | 한국 강점을 정당화한 한국합병봉고제비 비문 | 일본의 대러정책을 결정한 곳, 무린안 |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별장, 간코다카세가와니조엔 |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순종황제의 영욕을 품은 조라쿠칸
3. 도일한 한국인의 비참한 생활
늘어난 재일 한국인 | 재일 한국인의 민족차별 속 생존 투쟁과 민족운동 | 간토 대지진과 한국인 학살을 부른 유언비어 | 한국인 동화 사업과 전시 동원 | 일본의 항복과 한국인의 귀환
4. 교토에서 고난을 헤쳐 나간 한국인의 자취
한국인 노동자와 니시진 | 비와 호 소수 공사에 참여한 한국인 노동자 | 돼지우리라고 불렸던 한국인 노동자의 집단 거주지 | 가파르게 늘어난 한국인 유학생 | 한국인 유학생의 활동과 민족운동 | 학도병 소집과 대일 협력 | 교토제국대학의 한국인 교수 | 윤동주의 시비를 세운 도시샤대학 | 교토제국대학의 송몽규와 독립운동 | 정지용과 교토의 시상(詩想)

5 현대 | 한일의 문명 전환과 평화 공영 모색
1. 일제의 패망과 남북에 남은 일제 유산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해방 | 미 · 소의 점령과 분단국가의 수립 | 일제의 유산 ⑴: 인적 자원의 활용과 처벌 | 일제의 유산 ⑵: 물적 자원의 분포와 대체 | 일제의 유산 ⑶: 법령 · 제도, 이념 · 체제의 계승과 개혁 | 남북한과 일본의 문명 전환
2. 일본의 체제 변혁과 경제 발전
연합군이 주입한 자유와 민주 | 동아시아의 냉전과 미일 안보조약 | 6·25 전쟁과 일본의 경제 부흥
3. 한일의 국교 재개와 교류 확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 |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 | ‘평화선’의 철폐와 어업 지원 |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와 영주권 확보 | 문화재 반환과 문화 교류 | 독도 영유권 문제의 처리 | 남겨진 과제, 북일 수교 | 눈부시게 증가한 한일의 물적·인적 교류 | 서로에게 이익이 된 교류와 협력 | 자라나는 연대와 공감 의식
4. 한일 연대와 공생을 일깨우는 교토의 사적
일본인과 한국인을 함께 새긴 해방전사비 | 한국인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만주지 | 우키시마 호 순난자 추도비 | 우토로의 한국인 거주지 | 한국 문화의 멋을 보여 주는 고려미술관
5. 한일 관계의 새로운 이해와 『서울과 교토의 1만 년』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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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졸업 후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수사 학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를 거처, 서울시립대학교 인문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사편찬위원회와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한일미래포럼 운영자문위원장, 한일관계사학회 회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일본방송교육개발센터,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도호쿠대학의 외국인 연구원, 홋카이도대학, 도쿄대학 특임 교수 등을 겸임했다. 주요 저서로 『일제침략과 한국철도』, 『일본의 논리: 전환기의 역사교육과 한국인식』, 『한국의 논리: 전환기의 역사교육과 일본인식』,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 『주제와 쟁점으로 읽는 20세기 한일관계사』, 『한일의 역사갈등과 역사대화』, 『그 후의 한일관계: 한일회담, 한일협정』 등이 있고, 번역서로 『한국병합사의 연구』, 『식민통치의 허상과 실상』, 『일본의 문화내셔널리즘』, 『러일전쟁의 세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등이 있다.

'서울과 교토의 1만 년'은 교토라는 도시를 키워드로 한일관계사와 나아가 객관적으로 일본이란 나라를 이해하는 입문서로서 깊이가 있다. - MBC 뉴스

“임진왜란·국교 재개… 교토에 스민 한일교류史” -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이자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지낸 저자는 일본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구사하는 지일파(知日派) 학자다. 그는 1000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으며 외침이 없어 잘 보전된 도시, 한 해 5600만명 관광객이 찾는 교토에 대해 '한일 교류사'의 시각으로 세밀하게 분석한다. 고대 한반도 이주민의 문명 전파에서부터 임진왜란, 근대의 침략과 국교 재개의 역사가 교토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한국과 일본 사이 켜켜이 쌓인 시간” - 한국인들도 즐겨 찾는 대표적 관광지인 교토는 한국과 일본의 오랜 관계가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지은이 정재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교토라는 도시를 매개로 한-일 관계사를 적고 있다. -한겨레

천 년 이상 수도였던 교토를 통해 일본의 역사와 한일관계를 분석했다. 백제, 신라, 고구려 이주민이 많이 살았고 윤동주, 정지용의 애환이 서린 곳이자 일제강점기에 노동자로 강제 동원됐던 재일동포 집단거주지가 있는 교토 곳곳을 발로 누볐다. -동아일보

한일관계사 연구자인 저자가 교토의 유적, 유물 등을 중심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한일관계사를 복기했다. 일본 문화 중심지 교토의 풍경 위에 한일 교류의 궤적이 펼쳐진다. -한국일보

이 책에는 한일관계사의 권위자인 정재정 교수가 교토의 곳곳을 다니며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더듬은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고 그곳 학자들과 교류하며 한일 관계사를 연구한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사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불 수 있게 해 준다. -노컷뉴스

“日 '천년 고도'서 숨쉬는 한국문화” - 책은 한일관계사의 권위적 인물인 정재정 교수가 교토 곳곳을 돌아 다니며 역사의 현장을 더듬은 흔적을 담았다. 일본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한일 관계사를 연구한 저자는 책으로 하여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사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바라본다. -대전일보

“교토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 본 한·일 관계사” - ‘서울과 교토의 1만년’은 교토(京都)를 중심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일 관계사(史)를 살펴본다. 이 책은 필자가 교토의 유적과 유물을 소재삼아 풀어쓴 한일관계의 역사이자 일본사 이야기다. 저자는 “오랜 역사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신구문명을 교체하는 데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가를 서울과 교토라는 지역의 창을 통해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광주일보

“역사와 현재를 꿰는 교토 안내서” - 교토의 역사와 문화, 그 속에 녹아 있는 한국인의 발자취까지,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라 속살까지 파고드는 교토안내서가 나왔다. 서울과 교토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한일관계자 전문가 정재정 교수가 쓴 '서울과 교토의 1만년'이 그것.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다'고 교토의 역사책이자 한일관계사를 조망한 이 책을 들고 여행을 하면 교토가 달리 보일 것 같은 느낌이다. -내일신문

소머즈2016-10-09 01:06:41

우리는 일본을 가리켜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마음으로는 거리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한국은 일본의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 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문명의 교류는 평화적으로 전해지기도 했지만 침략이라는 강제적 방법으로 전해지기도 했기 때문에 지금도 양국의 역사 인식과 관점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책은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에 이르는 교토 속에 숨쉬고 있는 한국인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여러 차례 교토를 여행하면서 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보았지만 한국과의 연관성을 깊게 생각지 못하고 단순히 일본의 고도(古都)에 남아 있는 것으로만 인식했던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이 책은 교토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교토의 유적과 유물을 볼 때 그 속에 녹아져 있는 그 옛날 도래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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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쏟아지다2016-10-04 10:48:49

역사는 역사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내 의견과 마음은 그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 해야 할 것. 일본이 나쁘다고 싫다는 것은 우리나라 민족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아픔이다. 이것은 나라 발전에 도우밍 되지 않는다. 길에서서 독도가 왜 우리나라 땅이냐고 묻는 다면 그것을 재대로 역사에 기반해서 설명하는 사람은 드물다. 삼국유사부터 세종의 견제까지 역사적으로 이해가 되야 우리나라 역사 그대로 스며든 것이다. 교토는 일본의 수도로 오랜 기간 자리했다. 애 교툐인가부터 오랜 기간 유지된 이유를 안다면 그네들의 문화와 정치사 등등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역사를 아픔 그 자체가 아닌 발전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한일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 기반이 될 책이 서울과 교토 1만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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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boo2016-10-02 19:11:28

저자 정재정 교수의 한일 관계에 대한 식견과 그동안의 연구 결과가 실로 얼마나 견고하고 방대한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 역사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교과서를 통해 외우고 들었던 것, 사회인이 되고 읽은 몇 권의 역사서 내용이 전부였던 내게 이 책은 조금 어려웠다. 그러나 이 책을 내가 대학전공서나 수험서로 읽게된 것이 아닌 이상 이런 부분에 크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일본과 우리는 한일 수교 50주년의 경축을 무색케할만큼 아픈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떠안고있다. 위안부, 식민지배, 독도영유권 문제 등에 있어서는 아직도 각국의 평행적 입장만 견지할뿐이다. 그러나 아픈 역사 앞에 소모적인 갈등과 대립에 묶여 있기보다는 한일관계의 역사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양국의 새로운 관계 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은 한일관계의 과거와 현재와 관련한 다양한 사진 자료와 내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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