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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_80

쾌락

IL PIACERE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이현경

495쪽, B6, 15,000원

2016년 01월 15일

ISBN. 978-89-324-0462-2

이 도서의 판매처

“데카당스의 기념비적인 백과사전”
복잡한 사랑과 관능적인 모험의 끝은 어디인가?
국내 초역

공허한 기존 가치와 파멸로 치닫는 현실 세계의 불화를
그린 이탈리아 유미주의 문학의 걸작

이탈리아 유미주의 문학의 기수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대표작 『쾌락』이 을유세계문학전집 80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이현경의 충실한 원전 완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이 작품은 토마스 만, 제임스 조이스 등에 큰 영향을 준 탐미주의 문학의 백미다. 단눈치오는 『쾌락』과 『죄 없는 자(L’innocente)』, 『죽음의 승리(Il trionfo della morte)』 자신의 세 작품에 “장미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 3부작임을 밝혔다. 

단눈치오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 작품을 통해서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복잡한 사랑의 열정과 관능적인 모험의 끝은 어디인가?”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무엇인가?” 1889년 출간된 『쾌락』에는 단눈치오가 경험한 로마 사교계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안드레아 스페렐리라는 ‘또 다른 자아’를 통해 자신의 야망과 모순, 이상과 예술적 취향을 묘사했다. 향락적이고 세기말적인 분위기의 로마를 계속 등장시키며 귀족 세계를 표현했다. 

『쾌락』은 서사 구조나 표현 방식에서는 자연주의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지만 미세한 심리 분석과 비밀스러운 감각들, 지식인의 복잡한 삶을 심도 있게 파헤치면서 자연주의의 경계를 벗어나, 오히려 데카당스하고 유미주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특히 안드레아를 둘러싼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 작품들을 묘사할 때 유미주의는 절정에 이른다.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인용하고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소설의 분위기를 한층 세련되게 만들어 19세기 말부터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수많은 비유와 은유로 안드레아의 심리를 한층 깊이 있게 표현하여 비난받아 마땅할 부도덕한 행위들을 오히려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단눈치오로 인해 이탈리아 문학계에 처음으로 데카당스한 인물이 등장한다. 단눈치오는 주인공 안드레아 스페렐리가 겪는 연애 사건들을 통해 기존 가치의 공허함과 쾌락주의에 병들어 위기에 빠진 귀족 세계와 파멸로 치닫는 현실 세계를 보여 준다. 안드레아는 귀족이며 유미주의자이다. 단눈치오는 안드레아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동시에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안드레아는 단눈치오이자 단눈치오가 꿈꾸는 존재이다. 

그가 사랑하는 로마는 “황제들의 로마가 아니라 교황들의 로마였고, 아치들과 고대 대중목욕탕이나 포로 로마노의 로마가 아니라 빌라와 분수와 교회”로 이루어진 후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화려한 로마다. 그래서 『쾌락』은 지나칠 정도로 세련되고 화려한 로마의 소설이라고도 칭한다. 소설에서는 대화 장면보다는 주변 환경과 상황,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자세히 묘사된다. 이것은 결정을 내려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고 내적인 갈등에 자주 빠지는 우유부단한 안드레아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단눈치오는 그러한 묘사에서 귀족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세련되고도 섬세한 언어들을 사용한다. 

단눈치오는 안드레아 스페렐리라는 서명이 들어간 판화를 판매해서 실생활과 예술을 완전히 하나로 만들고 사교계와 출판 시장에 작품을 선전했다. 『쾌락』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어 1918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상적인 청년 귀족 안드레아 스페렐리는 아버지에게서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여자들과의 사랑이나 정사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물려받는다. 쾌락을 좇아 미혼이나 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수없이 많은 여자들을 만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 사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치명적인 여인 엘레나 무티는 달랐다. 관능적이고 도발적이며 화려한 젊은 미망인인 그녀와의 만남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쾌락을 약속한다. 그런데 어느 날 엘레나는 돌연 안드레아를 떠나 버리고 부유한 영국 귀족과 결혼을 한다. 실연의 아픔에 괴로워하던 안드레아는 사교계에서 이 여자, 저 여자와 만나고 연적과 결투까지 벌인다. 결투에서 부상을 당한 안드레아 앞에 엘레나와는 정반대인 교양 있고 지적 호기심이 강하며 종교적인 여인 마리아 페레스가 나타나는데…….


지금까지도 단눈치오의 이질적이고 관능적이고 야수적이고 데카당스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베네데토 크로체 

안드레아의 냉소주의와 타락뿐만 아니라 ‘빈곤한 도덕성’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데카당스한 유미주의자의 탈선과 모순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온갖 모순된 성향들 속에서 그는 의지와 도덕성을 모두 상실했고 의지의 자리를 본능이, 윤리적 감각의 자리를 미적 감각이 차지해 버렸다고 지적한다. 모순되고 부도덕하며 본능에 굴복하는 안드레아에게서 진실성과 도덕성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의 추구와 숭배, 관능적인 쾌락과 모험으로 가득 찬 사랑뿐이다. 이중적이고 나약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자체가 이중적이고 허위로 가득 차 있으며 거짓말과 속임수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빼놓지 않고 지적한다. 
-이현경, 「해설」 중에서
제1권
제2권
제3권
제4권


해설 모방할 수 없는 삶, 예술 작품 같은 삶
판본 소개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연보

저자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1863년 이탈리아 페스카라의 유복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원래 성은 달랐지만 귀족이었던 외삼촌 안토니오 단눈치오에게 유산을 물려받고 그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 1874년부터1881년까지 프라토 지방의 치코니니 기숙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1879년 아버지의 후원으로 첫 시집 『이른 봄(Primo Vere)』을 출간하게 되고 크게 성공을 거뒀다. 1881년 로마로 이주해서 로마대학 문학부에서 공부했다.
1883년 갈레세 공작 가문의 마리아 아르두앙과 결혼하여 귀족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실현했다. 마리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지만 단눈치오의 여성 편력 때문에 1890년 파경을 맞았다. 1887년에 만난 바 르바라 레오니와 1892년까지 고통스러운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쾌락』과 단눈치오의 다른 작품들에 계속 등장했다. 1894년 여배우 엘레오노라 두세를 베네치아에서 만났다. 엘레오노라에게 많은 영감을 받아 그녀와 사랑을 나누던 시기에 가장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으며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1895년 초인 사상을 다룬 『바위 위의 처녀들(Le vergini delle rocce)』을 발표했으며, 이후 니체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초인 시학을 완성했다.
1897년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국수주의자들과 함께 연설가로 활동하며 군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군중들을 선동했다. 시인에서 군인으로 변신해서 52세의 나이에 군에 입대했다. 1916년 비행기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되었지만 예언자적 시인, 영웅적 초인으로 추앙될 정도로 인기는 절정에 올랐다.
전쟁 후 몬테네보소 공작 작위를 받지만 파시즘 시기에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을 불신해서 가르다 호수의 별장에 칩거하다가 1938년에 사망했다. 단눈치오의 작품들은 현대 이탈리아 문학뿐만 아니라 토마스 만이나 제임스 조이스 같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역자

이현경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비교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제1회 ‘번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탈리아 정부가 주는 ‘국가번역상’을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 통번역학과의 교수로 재직했다. 이탈로 칼비노, 프리모 레비, 알베르토 모라비아,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 카를로 콜로디의 『삐노끼오의 모험』과 잔니 로다리의 그림책들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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