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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_111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강초롱

200쪽, 128*188, 12,000원

2021년 04월 10일

ISBN. 978-89-324-0504-9

이 도서의 판매처

보부아르의 아주 특별한 소설

 『아주 편안한 죽음』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자전 소설이다. 당시 보부아르는 유명한 『제2의 성』을 비롯해 이미 많은 책을 펴낸 작가 겸 지식인이었으나, 그녀의 연인이자 동반자였던 사르트르는 보부아르가 쓴 최고의 작품으로 이 소설을 꼽았다. 무엇이 이 소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 

잘 알려졌다시피 보부아르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했던 사상가이자 철학자다. 또 한 명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인간 존재 사이의 갈등을 존재론적 숙명으로 규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보부아르는 그러한 갈등 관계를 넘어서 인간 존재가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며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문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여기서 『아주 편안한 죽음』의 진가가 드러난다. 그녀의 다른 소설들이 인간 실존의 딜레마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부조리를 좀처럼 넘어서지 못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은 보부아르가 바랐던 대로 갈등과 딜레마를 뛰어넘어 타인과의 상생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바로 주인공 ‘나’가 죽음을 앞둔 엄마에게 공감하고 연대하며 엄마와 화해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직접 겪었던 보부아르는 지성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부조리한’ 삶, 즉 오직 살아 내고 체험함으로써만 증언할 수 있는 삶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 엄마는 주인공과 여러모로 대척점에 있다. 엄마는 늙은 육체와 당면한 죽음, 더 나아가 그 당시 여성의 폐쇄적인 삶을 대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아버지들의 세계’로 대변되는 지적이고 정신적인 삶을 지향하며 살아왔던 주인공은 어머니의 마지막 날들을 함께하면서 그간 자신이 멀리했던 어머니의 삶을 돌아본다. 거기에는 주체성을 포기하며 타자로 살도록 강요받아 온 한 인간의 생애, 나아가 당대 여성 전체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작가가 한때 냉대하며 외면했던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며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그와 동시에 남과 여, 육체와 정신, 삶과 죽음 등 구별 짓기로 가득했던 인간 내면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다.           
  


죽음을 직시하고 그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다 

‘죽음’을 전면에 내세운 이 소설은 누구나 살면서 겪을 죽음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 광경을 직시한다. ‘나’는 말기 암에 시달리는 엄마가 산송장과 다를 바 없음을 인정하고,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매일 조금씩 더 다가오는 죽음의 비참한 겉모습을 무심결에 일상의 일부로 여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쉬쉬해야 할 무언가로, 심지어 때로는 금기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보부아르는 여기에 반기를 든다. 소설을 통해 죽음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 주는 보부아르는 죽음의 어두운 속성을 감추려고만 하는 현대 사회의 허상과 거만함을 폭로한다.    

소설 속 ‘나’는 엄마가 비교적 편안히 죽음을 맞이했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당사자에게는 고통과 두려움이 동반되었을지언정, 옆에서 손을 얹어 주고 달래 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운이 좋은 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부아르 자신은 어머니의 죽음을 그처럼 편안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이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늙어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철학적 화두를 발견했던 것이다. 급작스런 사고, 크고 작은 병, 혹은 그 모든 불행을 피했음에도 결국 활력이 다한 늙은 몸. 모든 인간은 외부에서 기인한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 따라서 보부아르는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사르트르는 바로 이 점을 발견하고 『아주 편안한 죽음』을 보부아르의 최고작으로 꼽았는지도 모른다. 보부아르는 상아탑이 아닌 병실에서, 사랑과 미움이 뒤섞인 인물을 둘러싼 애도와 회한과 즉물적인 비참함을 동시에 체험함으로써 비로소 실존주의를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부조리를 이해하고 분해하는 대신에 일종의 과제로서 받아들이는 삶, 그것은 젊은 사르트르가 『구토』를 비롯한 문학 작품에서 추구했던 태도이기도 했다.

『아주 편안한 죽음』은 이러한 깨달음 혹은 주장을 가장 보편적인 소재와 문장 속에 녹인 작품이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한 실존주의 문학으로서, 혹은 애증으로 엮인 어머니를 향한 절절한 고백으로서, 이 짧은 소설은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오래도록 흔들 것이다.



아주 편안한 죽음
I
II
III
IV
V
VI
VII
VIII

해설 타인에 대한 애도를 통해 자기 자신과 화해하기
판본 소개
시몬 드 보부아르 연보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

파리의 가톨릭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사 학위와 철학 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났다. 이후 그들이 결혼하지 않고 50여 년간 ‘계약 결혼’ 형태로 함께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녀는 여러 고등학교에서 12년간 철학을 가르쳤으나 학부모의 허위 고발로 1942년에 해고당했다. 1943년 소설 『초대받은 여자』와 1944년 철학서 『피뤼스와 시네아스』 등을 발표하면서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1945년에 복권된 교직을 완전히 떠났다. 그리고 사르트르와 함께 정치철학 잡지 『현대』를 창간하고 소설, 희곡, 철학서, 기행문, 회고록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다.
보부아르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 준 『제2의 성』은 1949년에 출간됐는데, 이 저서는 실존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여성 문제를 고찰하여 당시 프랑스 사회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출간 1주일 만에 프랑스에서 2만 부 이상 팔릴 만큼 여성 독자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1954년에는 『레 망다랭』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하면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뿐 아니라 소설가로서도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에는 여성해방운동(MLF)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여성 운동에 앞장섰고, 1986년 타계할 때까지 페미니스트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 밖에 주요 저서로는 회고록 5부작인 『얌전한 처녀의 회상』, 『나이의 힘』, 『상황의 힘』, 『결국』, 『작별의 의식』과 소설 『타인의 피』, 『모든 인간은 죽는다』, 『위기의 여자』, 『아주 편안한 죽음』, 그리고 철학서 『노년』과 『애매성의 윤리를 위하여』, 희곡 『군식구』, 기행문 『미국에서의 나날들』 등이 있다.


역자

강초롱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파리 7대학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자서전 담론」으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는 「진실‘들’을 드러내는 은밀한 목소리: 『초대받은 여자』의 주변인물 연구」, 「어머니를 위한 애도의 두 가지 전략: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과 에르노의 『한 여자』 비교」, 「자유와 상황의 충돌의 재현: 『레 망다랭』의 다성화 전략」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