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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각본

박찬욱, 정서경

184쪽, 150*210mm, 15,000원

2022년 08월 05일

ISBN. 978-89-324-7475-5

이 도서의 판매처

제75회 칸 영화제 감독상
제43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각본상, 최우수 작품상
제58회 대종상 영화제 작품상, 각본상
제4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올해의 각본상
2022 부일영화상 최우수 작품상
2022년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10대 영화


<헤어질 결심>의 오리지널 각본,
영화에서 만나지 못한 순간들과 마주하다

영화 각본이 선사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촬영과 편집을 마친 최종 결과물과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 각본』은 특히 이런 발견의 즐거움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서래가 직접 지어낸 『산해경』 이야기는 서래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열쇠를 하나 더 제공하며, 이포로 떠난 해준이 전해 듣게 되는 질곡동 사건의 후일담은 불길한 기운을 풍긴다. 어두운 밤에 세차를 한답시고 밖으로 나간 해준을 바라보는 정안의 실루엣도 각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듯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부분들 역시 하나같이 <헤어질 결심>의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어서, 이 책의 독자들은 자신만의 ‘관객판’ 편집본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각본의 표지를 장식한 산해경 그림이 지닌 무게감은 각본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체감할 수 있다. 이 산해경은 단순한 필사본이 아니라 서래의 외할아버지인 계봉석으로부터 주어진 유산이며, 특히 필사 과정에서 필사자의 창작이 자유롭게 섞여 들어가는 책이기 때문에 그의 삶이 은연중에 노출된다. 따라서 이 산해경을 다시 한글로 필사한 서래의 녹색 노트는 그녀의 삶을 설화의 형태로 비추는 거울 또는 수정구가 되어, 좀처럼 자신에 대해 발화하지 않는 서래의 내면을 살피도록 관객과 해준을 이끈다. 예를 들어 서래 대신 월요일 할머니의 집에 간 해준이 할머니에게 읽어 주는 대목에 등장하는 벌레들은 그보다 앞서 해준이 서래에게 들려준 시체 먹는 벌레 이야기에 등장했던 것들이고, 이는 서래의 삶에서 해준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살인과 추락으로 끝나는 이 짧은 일화는 그 직후 해준이 서래의 살인 트릭을 복기하는 장면과 보이스 오버로 이어지면서 비극적인 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 속의 현실에 가까이 닿아 있는, 때로는 그 현실을 예견하는 듯한 이야기가 서래의 내면 어디에서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죄의식, 무의식, 아니면 스스로의 삶마저 하나의 소재로 사용하는 작가적인 냉정함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다양한 가능성은 <헤어질 결심>을 더욱 풍부한 가능성 속으로 이끈다.

영화 속의 인상적인 순간들을 다시 만나다

물론 영화 속의 명대사들을 그대로 재확인하는 즐거움도 크다. <헤어질 결심>은 이 ‘확인’의 즐거움이 각별한 작품이기도 하다.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서래의 한국어 대사와 번역기 스타일로 작성된 한국어 문장들은 활자로 읽었을 때도 특별한 매력을 풍기며, 해준의 대사 역시 단어 선정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천천히 톺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어 대사에는 원문이 함께 실려 있어 그 의미를 더 깊이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영화의 안과 밖을 충실히 담은 각본을 읽고 나면 <헤어질 결심>의 여운을 더욱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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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는 서래(…) 자조적인 표정은 사라지고 진지해졌다. 이번에는 통역기 앱의 여자 목소리를 선택했다.

여자 성우
농담 안 할 테니까 해준 씨도 솔직히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긴장하는 해준)
날 떠난 다음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아마 살아있는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경직되는 해준)
당신은 내내 편하게 잠을 한숨도 못 잤죠?
억지로 눈을 감아도 자꾸만 내가 보였죠?
(움찔하는 해준을 향해 한 걸음 다가오는 서래)
당신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해준을 보는 간절한 서래의 눈빛)
그날 밤 시장에서 우연히 나와 만났을 때, 당신은 다시 사는 것 같았죠?
마침내.

165~166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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