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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실문고_

코펜하겐 삼부작 3 | 의존

토베 디틀레우센 ,서제인

256쪽, 115*190mm, 15,000원

2022년 08월 20일

ISBN. 978-89-324-6133-5

이 도서의 판매처

어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다

3부작의 앞선 두 권과 달리 2019년에야 처음 영미권에 소개된 『의존』은 세 권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동시에 이 시리즈의 진수를 담은 작품으로 꼽힌다. 단순히 내용이 어두워서가 아니다. 3부작 가운데 유일하게 2부 구성으로 이루어진 『의존』은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가면서 급격히 글의 스타일을 뒤튼다. 마치 하드보일드 느와르에서 화려한 묘사를 덜어 내고 더욱 건조하게 압축한 글 덩어리를 보는 듯하다. 사건이 진행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묘사는 무감각할 정도로 메말라 간다. 가장 나중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시기는 어린 시절보다 훨씬 많은 기억이 남아 있을 테지만, 디틀레우센은 그 통념을 비틀어 많은 순간을 공백 속에 방치한 채 비극의 뼈대만 세워 둠으로써 그 황량한 광경을 증폭시킨다. 독자는 벌어지는 사건의 충격을 문장의 속도와 질감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섬뜩하리만치 냉정하게 자신의 과오를 관찰한다는 ‘코펜하겐 3부작’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후반부에서 극대화된다. 1985년에 이 3부작의 앞선 두 권을 격찬했던 틸리 올슨은 마지막 책인 『의존』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는 정확하게 이 작품의 성격을 예측해 냈던 것이다. 이처럼 『의존』은 이 3부작의 개성을 완성시키는 작품이자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는 작품으로, 특히 아름답고 느린 순간들을 조심스레 모아 담은 『어린 시절』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3부작 전체의 구조를 완성시킨다.

*‘코펜하겐 3부작’ 소개

출간 후 50여 년이 지나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 10선에 선정된 회고록

비극적인 여성 작가의 삶.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조명받는 이 주제를 다룬 책은 그만큼 치열한 경쟁과 마주해야 한다. 이때는 실비아 플라스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유명한 작가의 삶을 그리거나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을수록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공식에 거의 부합하지 않는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코펜하겐 3부작’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태풍처럼 그 틀을 부수었다. 덴마크 바깥에는 반세기 가까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가 무려 50여 년 전에 쓴 회고록이 독자와 비평가의 압도적인 찬사를 얻은 것이다.

정의正義에서 벗어남으로써
정의定義에서 탈출하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작가의 유년기부터 서른 남짓까지를 회고하는 이 3부작은 엘레나 페란테를 연상시키는 설정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끝은 노스탤지어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 흔히 애수와 소회로 채워지는 회고록을 특별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비결은 바로 냉정함이다. 그는 어느 타인보다 더 냉정하게, 마치 환부를 관찰하는 의사처럼 스스로의 결점들을 관찰했고, 그 관찰 결과에 아무런 판단도 덧붙이지 않았다. 합리화도, 자책도, 원망도 없다. 심지어 디틀레우센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문하지 않는다. 회고를 통한 감정적인 결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작가의 고백이 독자의 공감이나 연민으로 이어지는 회고록 장르의 심리적 전통을 파괴해 버렸다. 실로 전위적인 결과였다.

1985년에 『어린 시절』과 『청춘』을 통해 처음으로 디틀레우센을 접한 미국 여성주의 문학계는 두 작품의 이러한 특징을 격찬했다. 디틀레우센이 ‘불의를 깨닫고 정의를 추구(해야)하는 여성’이라는 정치적 프레임마저 벗어던지고 오류와 불안에 기꺼이 노출된 여성-인간을 출현시켰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부여된 정의와 윤리로부터 스스로의 욕망을 따라 이탈하는 것, 이는 파멸을 부르는 불의이면서 더 높은 단계의 해방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 여성주의 운동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던 틸리 올슨은 디틀레우센의 회고록에 실린 이런 문제의식을 파악하고 그를 당대에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은 그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숙제처럼 다가온다.

또한 이 냉정함과 초연함은 특별한 종류의 온기도 가져다준다. 자기 연민이 없는 디틀레우센은 자신의 불행을 외부에 투사하지 않고, 따라서 적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조국을 점령한 독일군 병사들조차 미워하지 않는다. 시대와 운명이 그들을 거기로 이끌었을 뿐이고,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모든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불공평한 의무와 욕망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깨달았던 디틀레우센은 타인의 과오와 오류를 자신의 그것처럼 조용히 바라본다. 손쉽게 내 편과 상대편을 가르지 않고 온 인간이 근본적으로 같은 결핍을 지닌 동족임을 이해한 것이다. 회고록 사상 가장 냉철한 관찰자의 내면에 담긴 이 역설적인 따뜻함은 오래도록 잊기 어려운 감흥을 선사할 것이다.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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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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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토베 디틀레우센

20세기 덴마크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1917년에 코펜하겐에서 1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였으며 어머니는 전업 주부였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언어 구사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고등 교육을 포기해야 했다.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그는 노동자 지역에서 함께 자란 또래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고, 어머니와의 애착 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 결핍은 훗날 디틀레우센의 삶에 많은 시련을 안겨 주지만, 동시에 가장 풍부한 작가적 영감을 안겨 주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10대 후반에 가정부, 사무 비서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디틀레우센은 작가이자 비평가인 비고 F. 묄레르와 만나면서 그간 염원하던 문학계로 진출했다. 1939년 첫 번째 시집인 『소녀의 마음』을 출간한 뒤로 시집과 소설을 꾸준히 내놓았으며, 1950년대에는 동화를, 1960년대부터는 에세이를 여러 권 발표했다.
디틀레우센의 작품들은 생전에 덴마크 내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그를 해외에 알린 작품은 사후인 1985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두 권의 회고록 『어린 시절』(1967)과 『청춘』(1967)이었다(그 뒤의 이야기를 담은 『의존』(1971)은 2019년에야 영어로 번역되었다). 특히 미국의 여성주의 작가이자 활동가로 명망이 높았던 틸리 올슨은 이 회고록을 접한 뒤 디틀레우센을 해당 세대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았다. 당시만 해도 구세대적인 작가로 여겨지던 디틀레우센은 이후 본격적인 재평가를 받았고, 인간 내면의 불안을 관찰하는 데 있어 독보적인 능력을 가진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역자

서제인

기자, 편집자, 작가 등 글을 다루는 다양한 일을 하다가 번역을 시작했다. 거대하고 유기체적인 악기를 조율하는 일을 닮은 번역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 옮긴 책으로 『목구멍 속의 유령』,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노마드랜드』, 『아파트먼트』,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코펜하겐 삼부작』,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