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실패』는 이처럼 피할 수 없는 ‘faillite(파탄, 좌절)’의 암담하고도 구원적인 면에 비추어 글쓰기, 번역, 읽기와 같은 활동을 깊이 사유하는 책이다. 실패를 “소득 없고 기만적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우연”으로 생각하느냐, 글을 다루는 활동의 근원적 “토대이자 존재 이유, 원동력이자 지평”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프랑스어 동사 ‘faillir(그르치다)’에는 ‘faille(균열)’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글을 읽고 쓰는 이는 이 빈틈으로부터 “미묘한 쾌감”을 발견해 내는 자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실패란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그의 몫,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실패는 그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이자 “은밀한 희열”이다.
카프카, 콕토, 페소아의 실패하는 글쓰기
글을 쓰는 일은 암중모색의 연속이다. 늘 위태롭고 불안하며 완성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저자가 말하듯이 모든 글쓰기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실패에 ‘저항하여’ 쓸 것인가, 실패와 ‘더불어’ 쓸 것인가. 이 책에서 각별히 살펴보는 카프카, 콕토, 페소아는 후자의 길을 걸었고 그런 점에서 그들을 ‘위대한 실패자’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는 이들 작가를 ‘실패의 세 가지 초상’으로 거론하며, 카프카의 ‘지연(遲延)’에 대해(그는 자신의 글을 끊임없이 다시 쓰거나 아예 포기했다), 콕토의 ‘실패감’에 대해(그는 실패감을 실패 그 자체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받아들였다), 페소아의 ‘무기력’에 대해(그의 “다극성 무기력은 놀라운 폭발력을 지닌 행진이었다”) 지적이면서도 섬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클라로
프랑스 파리 출신의 작가이자 번역가. 서점원과 출판 교정자로 일했고, 현대 영미 문학을 프랑스어로 옮기는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토머스 핀천, 살만 루슈디, 휴버트 셀비 주니어 등의 작품을 옮겼다. 『마담 보바리』, 『일렉트릭 체어』 등 30여 권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펴냈으며, 현재 앵퀼트 출판사의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역자
이세진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명상록 수업』,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 『해피 크라시』, 『선택』,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기후정의선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