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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_앞.jpg

택리지

이중환 ,이익성(李翼成)

320쪽, A5신, 8,500원

2002년 04월 15일

ISBN. 89-324-60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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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중환이 썼고, 육당 최남선이 교열을 본 <택리지>가 1971년에 완역되어 '을유 문고'로 첫선을 보인 이래, 1993년에 단행본으로 엮여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 오다가 한글 세대를 위해 대폭 보완한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 이번 개정판은 한문투의 문장을 지양하고 문어투의 문체를 매끄럽게 다듬는 데 역점을 두었다.
풍수지리학적인 요소에 의존하면서도 과학적인 입장을 유지, 생활에 유용한 생태학적 관찰을 담고 있어 체계적인 한국 지리학의 원형을 제시한 저작으로 평가받는 <택리지>. 작품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해박한 지리적 지식은 신임사화의 주범으로 몰려 나이 30대에 겪어야 했던 좌절의 고통 속에 맺은 결실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적 이상향을 염두에 두고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던 저자의 인생 역정의 산물이다.
유배 생활과 몰락한 사대부로서 전국을 떠도는 생활을 해야 했던 이중환의 삶.
실학의 대가였던 성호 이익의 재종손이자, 본가의 5대조부터 처가의 직계 4대 모두 문과에 급제한 집안이라는 당시 사회에서는 좋은 조건 속에서 이중환은, 24세 되던 해 증광시 병과에 급제, 정계로 진출한다. 그러나, 10여 년 후 병조 정랑으로 있을 때, 목호룡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벼슬길이 완전히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의 나이 36세 때(영조 원년, 1725)는 4월까지 네 차례의 형을 당해야 했다. 수없는 고문 끝에 급기야 영조 3년(1727) 12월, 사헌부의 논계로 귀양을 감으로써 38세의 나이에 정계에서 반영구적으로 축출당한다.
이후 30여 년간 그가 죽기까지 그의 공적인 행로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단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사대부의 처지를 논한 부분과 영조 28년의 목회경 발문을 통해 그의 처지를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영조 3년(1727)에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이후에는 산림에 묻혀 은거생활조차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는데, 참으로 '천지간에 사대부라는 이름을 얻으면 가서 살 곳이 없다'는 것이 그가 직면한 현실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겠다.
인문지리학적 관점에서 씌어진 최초의 지리서!

우리나라 최초의 인문지리서로 평가받는 <택리지>는 「팔도총론」에서 지리와 인문의 상관 관계, 즉 자연 지역과 문화 지역이 서로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으며, 지리서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복거총론」의 사회적 입지 조건을 다룬 '인심' 편은 조선 시대 후기 당쟁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보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개정판 <택리지>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환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이루어진 조선 후기 몰락한 사대부의 '살 만한 곳은 어디인가' 라는
<택리지>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 의식. 이를 <택리지>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조망하고 있다.
사대부의 신분이 농, 공, 상으로 달라지게 된 원인과 내력을 서술한 「사민총론」으로 시작하여, 산줄기나 하천을 중심으로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의 여덟 지역으로 나눔과 동시에,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생활양식을 파악하여 생활권 단위로 지역을 구분, 전통적인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을 살핀「팔도총론」과 지리, 생리, 산수, 인심이라는 입지 조건을 들어 이상적인 '가거지可居地’를 논한 「복거총론」, 사대부가 벼슬길을 얻지 못하면 山林으로 돌아가 파묻혀 있는 것이 고금에 통하는 말이지만, 그럴 수 없는 조선 후기의 상황을 언급하는 등 사대부의 삶을 전망한 「총론」으로 이루어진 촌락 입지론 <택리지>는, 자연지리적 지식뿐만 아니라 지역과 인물, 인간의 생존과 자연 환경을 결부시켜 사대부의 이상향을 찾아서, 그러나 찾을 수 없었던 현실의 조망을 통해 당시 급변하던 조선 후기 사회를 읽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

이중환

조선 후기의 실학자.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增廣文科 병과丙科 급제.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실사구시實事求是 학풍 계승.
영조 즉위 후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1726년 절도로 귀양.
계속되는 유배 생활과 이후의 방랑 생활 가운데 지리•사회•경제를 연구하여 실학사에 길이 남을 공적을 세웠다.

역자

이익성

경남 밀양 출생. 사립정진학교 졸업. 옮긴 책으로 『경세유표(經世遺表)』, 『성호사설(星湖僿說)』, 『택리지(擇里志)』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