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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_14

라이겐

아르투어 슈니츨러 ,홍진호

344쪽, B6, 12,000원

2008년 11월 25일

ISBN. 978-89-324-0344-1

이 도서의 판매처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오스트리아 빈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 아래 기성 질서와 결별하고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창조 정신으로 들끓었다. 한 문화사학자는 새로운 예술과 지성이 태동하던 세기 전환기의 빈을 14세기 말 르네상스를 꽃피운 피렌체에 비견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걸출한 예술가와 사상가도 많이 나왔는데, 사상에서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등이 있었다면, 문학에서는 호프만스탈, 무질, 브로흐가, 음악에서는 쇤베르크, 말러가, 회화에서는 실레, 클림트 등이 있었다. 

 

지식과 문화에 대한 욕구가 유달랐던 이들은 당시 빈의 카페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지적 교류를 나누며 이른바 ‘빈 모더니즘(Wiener Modernism)’을 주도했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개별 존재의 불안, 욕망, 고독, 정념, 아버지 세대에 대한 거부, 세계에 대한 비관적 의식 등을 공유했는데, 이러한 감수성은 이후 현대 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1862∼1931) 역시 1900년경을 전후로 문학에서 빈 모더니즘을 대표하던 유대인 작가다. 그는 작품에서 특히 남녀 간 성적 충동의 세계를 즐겨 다루었는데, 이 때문에 퇴폐적 작가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는 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행동 양식을 분석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영웅적 인간보다는 전형적인 인간을 주로 주인공으로 삼았고, 인간의 보편적 심리가 잘 드러나는 특수한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런 슈니츨러와 정신적 동지임을 자처한 프로이트는 그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탁월한 심리 연구자입니다.” 

 

그간 국내에는 슈니츨러의 작품이 몇 가지 소개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라이겐』, 『아나톨』, 『구스틀 소위』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대표적 희곡 작품인 『라이겐(Reigen)』(1897)은 당대의 엄격한 성 도덕에서 벗어나는 관계를 그려 독일어 문학권에서 가장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킨 작품이다. 

‘라이겐’이란 원래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춤의 형태로, 원형으로 둘러선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을 말한다. 슈니츨러는 『라이겐』에서 이 춤의 형식을 빌려 왔다. 

창녀와 군인, 군인과 하녀, 하녀와 젊은 주인, 젊은 주인과 젊은 부인, 젊은 부인과 남편, 백작과 창녀 등 모두 열 커플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작품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한 인물이 마지막 에피소드에 다시 등장함으로써 춤으로서의 라이겐과 동일한 원형 구조를 보여 준다. 각각의 에피소드 역시 동일한 구조로 전개된다. 우선 두 연인 간의 대화가 이어지고, 이어 두 사람의 성 행위가 “......”로 암시되며, 다시 두 연인의 대화로 마무리된다. 부부 간의 성 관계를 묘사한 다섯 번째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륜 관계를 그렸다는 점, 성을 도덕으로 간단하게 단죄할 수 없는 자연적 본능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매우 컸다. 

 

『라이겐』은 1903년 빈 출판사를 통해 일반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8개월 만에 약 1만 4천 부나 팔릴 정도로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검열 당국은 이 책을 금서 목록에 올렸다. 『라이겐』은 공연 과정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192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초연이 되었는데, 보수적 시민 계급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이 작품을 ‘창녀촌 연극’이라 부르는가 하면, 반 라이겐 집회까지 벌였다. 1926년에는 상영 중인 극장 안으로 악취 폭탄이 투척되었고, 심지어 난투극까지 벌어져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슈니츨러는 『라이겐』 공연을 스스로 영구히 금지시켰다. 이 작품은 저작권이 소멸된 1982년에 가서야 비로소 공연이 가능해졌다. 『라이겐』의 성 묘사는 근본적으로 19세기 중반 이후 뿌리내리기 시작한 새로운 인간관의 영향과 관계가 싶다. 즉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성적 욕망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대표하는 근원적인 것이므로 엄격한 윤리적 잣대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작품의 배면에 깔려 있다. 이러한 성 의식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극단적인 반발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함께 실은 『아나톨(Anatol)』(1893)은 슈니츨러의 출세작으로, 일곱 편의 단막극으로 구성되었다. 주인공 아나톨은 매번 다른 연인과 등장하는데, 각각의 단막극은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고, 단막극 간의 연속성은 아나톨의 친구인 막스에 의해서만 생겨난다. 이와 같은 짧은 호흡, 길게 지속되지 못하는 사랑의 흐름은 당대 젊은이들의 데카당스적 경향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한편 『구스틀 소위(Leutnant Gustl)』(1900)는 경솔하고 허영심에 빠진 한 신출내기 소위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내적 독백만으로 서술된 최초의 독일 작품이다. 이러한 서술 기법은 심리 묘사에 탁월하여 현대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제임스의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1918)를 들 수 있다. 『구스틀 소위』는 바로 그 선구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당대의 젊은 장교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담고 있어 또 한번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슈니츨러는 군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장교 직위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슈니츨러는 유난히 사회적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작품을 많이 남겼다. 당대의 문제와 적극적으로 대결하려고 한 만큼 그는 누구보다도 세기 전환기의 시대정신을 잘 보여 주었다. 이는 문학이란 과연 무엇인지,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라이겐
창녀와 군인
군인과 하녀
하녀와 젊은 주인
젊은 주인과 젊은 부인
젊은 부인과 남편
남편과 귀여운 아가씨
귀여운 아가씨와 시인
시인과 여배우
여배우와 백작
백작과 창녀

아나톨
서문
운명에게 하는 질문
크리스마스 선물 사기
에피소드

저자

아르투어 슈니츨러

슈니츨러는 1900년을 전후로 호프만스탈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 모더니즘’을 대표하던 작가다. 활동 당시 그는 그의 작품이 “문학 작품이라기보다는 병원 검사 기록에 가깝다”는 비판을 자주 들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슈니츨러가 인간 심리를 마치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진찰하듯 지극히 분석적인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 결과를 작품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슈니츨러의 작품이 병원 검사 기록에 가깝다는 비판을 들은 것은 실제로 그가 의사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1862년 당시 빈의 저명한 후두과 의사인 요한 슈니츨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대 문제로 아버지를 자주 찾아오던 연극배우들을 통해 슈니츨러는 일찍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로 뜻을 펼치지 못했고, 결국 빈 의대에 들어가 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문학에 가 있었고, 의사로 일하던 시기에도 헤르만 바르, 후고 폰 호프만스탈, 페터 알텐베르크 등 빈 모더니즘 작가들과 교류했으며, 여러 편의 희곡과 단편 소설도 발표했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의학 공부는 슈니츨러의 정신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빈 의대는 모든 병의 원인을 물리적, 화학적 원인에서 찾는 유물론적 의학이 주도했다. 슈니츨러는 의학 공부를 통해 인간을 자유의지나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법칙의 영향권 안에 있는 생물학적, 물질적 존재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졌다. 물론 이러한 인간관은 근본적으로는 19세기 중반 이후 눈부시게 발전한 자연 과학의 영향과 관계가 깊다.
슈니츨러는 희곡과 소설에서 모두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죽음』, 『아나톨』, 『사랑 놀음』, 『라이겐』, 『구스틀 소위』,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등이 있다. 1928년 딸의 자살로 큰 충격을 받은 뒤 1931년 빈에서 뇌출혈로 눈을 감았다.

역자

홍진호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욕망하는 인간의 탄생』,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라이겐』, 『다른 한편』, 『독일 전설 1, 2』(공역)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토마스 만의 <트리스탄>, <토니오 크뢰거>에 나타나는 유미주의적 인간관의 수용」, 「자연주의와 세기 전환기 문학의 사이에서―하우프트만의 <선로지기 틸>에 나타나는 자연과 문명의 대립」, 「아름다운 삶의 모순과 유미주의적 멜랑콜리 — 후고 폰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