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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_18

빌헬름 텔

프리드리히 실러 ,이재영

236쪽, B6, 10,000원

2009년 02월 20일

ISBN. 978-89-324-0348-9

이 도서의 판매처

자유와 혁명의 우상, 빌헬름 텔 - 오스트리아의 폭정에 맞선 빌헬름 텔과 스위스 민중의 투쟁

쉴러 전공자에 의한 충실한 번역과 깊이 있는 해설

 

14세기 있었던 스위스 민중 봉기를 배경으로 한 빌헬름 텔은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최고봉을 이룬 쉴러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평생 자유를 화두로 삼은 그의 사상적 지향성과 작가로서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그간 국내에서 이 작품은 아동용으로 개작된 것이 주류를 이루어 순수 문학 애호가들에게는 아쉬움을 주었다. 작품을 옮긴 문학 평론가 이재영은 쉴러 문학의 전공자답게 알기 쉬우면서도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보여 주었다. 또한 해설에서는 쉴러 사상의 핵심과 그의 문학 세계, 그리고 본 작품의 사회역사적 맥락과 내적 의미를 유기적이고도 깊고 풍부하게 조명했다. 그 밖에도 좀 더 실감 나는 작품 감상을 위해 작품 속 사건의 무대가 된 곳의 지도도 함께 수록했다. 이로써 본 번역서는 명실상부 빌헬름 텔의 대표적 번역서로 자리매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빌헬름 텔1804년 괴테의 감독 아래 바이마르 궁정 극장에서 초연되어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민중의 저항과 자유 의식, 심지어 폭군 살해의 내용까지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정치적 폭발력 때문이 공연이 금지되거나 많은 부분이 삭제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결국 독일 연극사상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가 되었고, 19세기 후반부터는 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 되는가 하면, 오페라로도 개작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스위스에서는 국민극의 반열에 올라 지금도 해마다 상연되고 있다.

이러한 인기는 무엇보다도 빌헬름 텔이라는 인물의 대중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화살로 맞힌 것으로 유명한 빌헬름 텔은 역사가들에게 의해 비록 실존 인물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15세기부터 쉴러 당대에 이르기까지 자유와 혁명의 상징으로 수많은 작품에 등장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뒤로는 더욱 주목받았고, 혁명의 전설적인 선조로 즐겨 언급되었다. ‘자유의 시인쉴러가 죽음을 앞두고 기력을 다해 창조해 낸 인물이 빌헬름 텔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그와 걸맞은 일이었다.

 

줄거리

이야기는 만년설로 덮여 있는 알프스 산정 아래 푸른 초원과 호수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디에선가 목부의 노랫소리와 가축들의 방울 소리가 평화롭게 울려온다. 그러나 잠시 뒤 산 위에서 둔탁한 굉음이 들려오고 구름 그림자가 지나가더니 나무꾼 바움가르텐이 정신없이 달려온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겁탈하려고 했던 성주를 도끼로 찍어 죽인 뒤 기병들에게 쫓기는 중이었다. 바움가르텐은 거센 폭풍우가 치는 호수를 건너가게 해 달라고 애걸하지만 모두 난색을 보인다. 때마침 텔이 나타나 죽음을 무릅쓰고 바움가르텐을 도망시켜 준다.

한편 멜히탈이라는 젊은 농부는 관헌이 황소를 빼앗아 가려 하자 그를 때려눕힌 뒤 몸을 숨긴다. 그러자 태수 란덴베르크는 도망간 멜히탈을 대신해 그 아버지의 눈을 파내게 한다. 또 다른 태수 게슬러는 백성들을 가두어 놓을 감옥을 짓게 하는가 하면, 높은 장대 위에 자신의 모자를 걸어 놓고 그것에 절을 하도록 강요한다. 태수의 횡포와 억압에 참다못한 슈비츠, 우리(Uri), 운터발덴 주 사람들은 마침내 뤼틀리에 모여 동맹을 결성하고 텔에게도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텔은 뱀도 가만있는 사람은 물지 않습니다라며 동참을 거절한다.

이후 텔은 아들과 함께 폭군 게슬러의 모자가 걸려 있는 장대 앞을 지나면서 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로잡히고 만다. 목숨을 건지려면 아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사과를 화살로 맞혀야만 한다. 결국 사과를 명중시킨 텔은 풀려나는 듯했지만, 텔이 준비한 두 개의 화살 중 하나가 실은 게슬러를 겨냥한 것임이 드러나자 다시 압송되고 마는데…….

 

자유를 위해 부당한 힘과 상황에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쉴러는 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스위스 역사, 지리, 풍속에 대한 책을 두루 섭렵했다. 이 작품에는 민중의 저항권과 민주주의적 혁신의 필요성을 옹호하면서도 과도한 폭력과 질서의 와해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 쉴러의 치열한 모색이 담겨 있다. 이 극은 민주주의에 대한 담대하고 심원한 옹호이며,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쉴러의 자유 의식이 그의 생의 끝자락에 찍어 놓은 굵은 마침표와도 같다.

 

1막
2막
3막
4막
5막

스위스 지도

해설: 자유를 위한 저항과 혁명, 그리고 폭력
판본 소개
프리드리히 쉴러 연보

저자

프리드리히 실러

‘자유의 시인’ ‘독일의 셰익스피어’ 등으로 불리는 쉴러는 1759년 독일 남부 네카 강변의 마르바흐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성직자가 될 생각으로 루트비히스부르크 라틴어 학교에 들어갔으나, 얼마 뒤 칼 오이겐 공작의 명령에 따라 칼 군사 학교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시종 복종과 훈육을 강요받으며 7년간 갇혀 지내야 했던 그는 문학을 자유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생각했다. 그는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1781년 처녀작 『도적들』을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폭군들이 불태워 버릴 책”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으로 인해 그는 구금과 집필 금지 명령까지 받았다. 이에 자유롭게 문학을 계속하기 위해 그는 고향으로부터 탈주를 감행했다. 1789년 괴테의 주선으로 예나대학의 철학 교수로 부임하기 전까지 그는 계속되는 도피 생활로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에 시달렸다. 그 후에도 자주 중병을 앓은 그는 1805년 5월 폐렴이 악화되어 생을 마쳤다.
대표적인 극작품으로 『도적들』을 비롯해 『피에스코의 모반』, 『간계와 사랑』, 『돈 카를로스』, 『발렌슈타인』, 『마리아 슈투아르트』, 『오를레앙의 처녀』 등이 있다. 그 밖에도 『네덜란드 독립사』, 『30년 전쟁사』 같은 역사서와 「숭고에 대하여」, 「인간의 미적 교육에 대한 서한」, 「소박 문학과 성찰 문학에 대하여」 등 미학 관련 글도 다수 발표했다. 쉴러는 인간을 속박하는 세계에 대항하여 평생 자유와 정의를 열망했다. 그런 만큼 ‘자유’는 쉴러 문학의 핵심 키워드다. 그에게 사상적으로 특히 영향을 준 사건은 프랑스 혁명이었다. 그는 자유, 평등, 우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동조했고 자연권과 저항권도 인정했다. 하지만 혁명이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역자

이재영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철학과에서 칸트 미학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같은 대학 박사 과정에서 쉴러의 미학과 문학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아이들은 철학자다』, 『두 여자 사랑하기』, 『철학의 탄생』, 『이민자들』 등이 있다. 2001년 「상실의 세계와 세계의 상실 - 신경숙론」으로 제8회 창비 신인 평론상을 받았으며, 베를린자유대학과 경원대학교에서 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