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예술의 거장_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
Glenn Gould: The Ecstasy and Tragedy of Genius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몸과 영혼을 가장 깊이까지 파헤친 역작
글렌 굴드는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그는 데뷔하자마자 기존의 피아니스트들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파괴한 연주를 선보이면서 충격을 안겨 주었고, 한편으로는 독특하고 괴상한 행동을 거듭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괴짜는 세상의 상식이나 규칙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과 소리만을 탐구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바로 대중이 원하는 천재상 그 자체였다. 굴드는 전성기에 공연을 중단한 뒤 평생 대중과 담을 쌓았지만, 그렇게 스스로 격리된 뒤로도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고 방송에 출연하며 신비로운 괴짜 이미지를 평생 선보여 왔다. 미디어를 통해 관심받기를 즐기면서도 실제 자신의 모습은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이 역설적인 측면은 굴드의 삶 속에서 수없이 마주하게 되는 특성 가운데 하나다.
굴드의 친구이자 정신의학 전문가인 피터 오스트왈드는 이처럼 독특한 굴드의 삶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었다. 오스트왈드는 평생 여러 신체적 통증에 시달린 굴드의 증상들이 그의 정신 상태와 이어져 있다고 보았지만, 그것을 섣불리 치료하거나 교정할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가 보기에 굴드의 신체적 증상은 굴드 본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과 깊이 연관돼 있었던 것이다. 고독은 굴드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이자 그의 예술에 힘을 불어넣는 원동력이었으므로 제거하거나 대체할 수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고독은 굴드라는 인간이자 피아니스트의 숙명이었다.
이 사실을 존중했던 오스트왈드는 여러 증상명을 나열하는 식으로 굴드의 심리를 해부하지 않는다. 이 책 속의 그는 한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몇 가지의 페널티를 감수하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임상 심리를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던 올리버 색스가 이 책을 읽고 깊이 감탄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황금기,
굴드가 살아가던 시대를 꼼꼼히 묘사하다
이 평전의 또 다른 장점은 굴드가 활동한 20세기 중반 북미 클래식 음악계의 풍경을 꼼꼼히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슈만과 니진스키에 관한 평전을 쓸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오스트왈드는 클래식 음악계의 유명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인물이었고,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여러 작곡가와 연주자의 활동 내역을 굴드의 그것과 겹쳐 놓을 수 있었다. 독자들은 이 작업을 통해 굴드가 당대 음악계와 어떤 식으로 소통하고 불화했는지, 그가 부수려 들었던 음악계의 기존 관념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굴드는 음악계의 여러 관습을 타파하려 했다는 점에서 자신과 비슷한 성정을 지닌 예후디 메뉴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 사이의 공감대를 확인하기도 하고, 얼핏 그와 정반대의 음악관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을 상찬하면서 자신을 향한 고정관념을 뒤흔들기도 한다. 특히 이 평전에는 굴드의 음악 활동 가운데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캐나다 작곡가 및 음악가들과의 교류가 잘 드러나 있어 굴드의 음악 세계를 더욱 완벽하게 조명해 준다. 이처럼 오스트왈드는 꼼꼼한 조사와 취재를 통해 굴드라는 인간의 전체적인 상을 그려내고 있다. 천재이기 이전에 한 명의 친구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오스트왈드는 굴드 안에 담겨 있는 비범함과 비루함을 모두 꺼내 보인다.
글렌 굴드는 지금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예술가이고, 그에 관한 평전이나 연구서도 계속 출간되고 있다. 그중에는 대단히 아름다운 문장을 선보이는 책도 있고, 전문가 수준으로 굴드의 음악 세계를 파헤치는 책도 있다. 하지만 굴드의 삶을 가장 꼼꼼히 조명한 이 책,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은 그 다양한 변주들 사이에서 글렌 굴드 평전의 중심이자 표준으로 오래도록 자리 잡을 것이다.
저자
피터 F. 오스트왈드
1928년 독일 베를린 출신으로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심리학자이자 의사였던 그는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클래식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고,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과 많은 교분을 쌓았다. 그 결과 여러 연주자의 심신 관련 문제를 접하면서 <연주자를 위한 건강 프로그램>을 고안하기도 했다. 본업에 충실한 와중에도 집필에 많은 힘을 쏟아 슈만 평전과 니진스키 평전 등 음악에 관한 여러 책을 썼다.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은 그가 병마와 싸우며 집필한 마지막 책이다. 199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떠났다.
역자
한경심
1985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 동아일보사에 입사했다. <음악동아>와 <여성동아> 기자로 활동했으며, 특히 음악과 예술 분야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현재 프리랜서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바그다드 소녀 투라의 일기>(동아일보사, 2004)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