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체성은 스크린에 저장되었습니다”
예술과 문화, 철학과 기술이 교차하는 현대 스크린 읽기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오늘날의 복잡하고 복합적인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복합적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 책의 출발은 여기일지도 모른다. 『스크리놀로지』는 우리를 둘러싼 스크린 환경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경험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 보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스마트폰처럼 손안의 스크린부터 도심 곳곳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고해상의 미디어 파사드까지, 현대인의 삶은 이제 스크린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우리는 스크린을 보고, 스크린에 비춰지며, 스크린을 통해 소통한다. 우리의 정체성이 스크린 속에 저장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일상 속, 영화관과 미술관, 심지어 자동차 제조사의 연구실에 이르기까지 스크린은 어디에나 편재하며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스럽게 복잡하고 다층적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이론가가 풀어낸 스크린의 모든 것
‘스크린’ 하면 한때는 영화를 먼저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에는 스크린을 보기 위해 특정 공간으로 찾아가야 했지만, 이제는 손안의 스크린 시대다. 더 나아가 요즘 세대는 스크린이 아닌 것조차 스크린처럼 인식한다. 화면만 보면 줌인을 시도하며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아이들의 행동을 떠올려 보라. 이제 스크린은 마치 공기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현대인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크린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우리가 논할 수 있는 스크린의 범위일까?
실제로 ‘스크린’을 검색해 보면 대부분 영화 중심의 개념에 한정되거나 과거의 역사로 소급되는 경우가 많다. 스크린에 대해 통합적이고 개괄적으로 접근한 책이나 담론은 매우 드물다. 이 지점에 문제의식을 느낀 저자는 스크린이라는 방대한 영역을 조망해 보려 직접 펜을 들었다.
학부 시절 회화를 전공하고 영상작가로도 활동했던 저자에게 2차원의 도화지와 캔버스, 그리고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모두 하나의 스크린이었다. 이후 공대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그는 스크린을 보다 기술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탐구하게 되었다. 3D 스크린, 터치 스크린, AR/VR 스크린, 투명 스크린, 접는 스크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스크린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그 형태와 범위를 전례 없이 확장해 가고 있다. 현재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로서, 저자는 도심 곳곳에 우후죽순 등장하는 미디어 파사드와 미디어월이 예술가들과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스크리놀로지: 우리의 세계는 스크린으로 연결되었다』는 이처럼 예술과 철학, 기술과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큰 그림을 그려 보려는 시도이자 제안이다.
스크린, 감각을 흔들고 세계를 재구성하다
먼저 1부에서는 스크린을 바라보는 데 있어 중요한 미학적 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곧 우리의 감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저자는 다양한 회화적 화면과 공간을 ‘창문’과 ‘거울’이라는 은유를 통해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창문과 거울을 주제로 작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등장하는데, 저자는 대표적으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예로 든다.
마그리트는 〈망원경〉이라는 작품을 통해 우리의 인지적 사고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창틀 너머로 보이는 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이 진짜인지 혹은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의 어두운 공간이 진짜인지 우리는 단정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스크린의 속성과도 닮아 있다. 콘텐츠가 투영되는 순간 스크린은 투명한 매개물로 인식되지만, 동시에 투명하지 않은 성질도 지닌다. 마그리트의 창문처럼 이중적인 스크린은 묘하고도 파괴적인 감각을 일으키며 보는 이로 하여금 계속해서 생각하고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만은 않는 스크린의 본질을 떠올릴 수 있다. 저자는 세상에 대한 관습적 믿음과 기대가 스크린 앞에서 순간순간의 긴장과 각성으로 유예되며 새로운 경험이 생성되는 지점에 주목하자고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이렇게 다양하고 확장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스크린이 사회 곳곳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2002년 개봉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존(톰 크루즈 분)은 허공에 떠 있는 스크린 위로 시각 자료들을 펼쳐 놓고 이를 조합하기 위해 손을 빠르게 움직인다. 이 장면은 당시에는 매우 미래적이고 공상과학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 세대에게는 오히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지난 20여 년간 스크린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음을 보여 준다. 저자에 따르면 이 장면은 단순한 상상력이 아닌 당시 개발 중이던 멀티터치 인터랙션 기술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고증된 결과였다.
한편 누군가는 이처럼 발전한 기술의 그늘과 폐해를 예술의 소재로 삼는다. 저자는 현대미술가 토마스 허쉬혼의 비디오 작업 〈터칭 리얼리티〉를 예로 든다. 이 작업에서는 전쟁이나 테러로 인해 절단된 팔과 다리 등의 참혹한 이미지들을 줌인과 줌아웃하며 조작하는 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허쉬혼은 이 작품을 통해 기술 발달에 따라 변화된 인간 감각과 인식을 시각화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터치 스크린이 인간의 감정을 점점 평평하게 만들고, 무뎌지게 하며, 결국에는 무감각하고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지구 반대편의 전쟁을 단지 이미지로만 접할 때 우리가 연민이나 책임감을 느끼는 대신, 무의식적으로 도덕적 거리두기를 하게 된다”고 경고했던 수전 손택의 문제 제기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스크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
이 밖에도 저자는 책 전반에서 VR, AR, MR 기술이 현재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투명 스크린이나 망막 스크린은 실제로 구현 가능한지, 도심 속 미디어 파사드는 단순히 광고판 이상의 역할을 해 낼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는 과연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등을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스크린’이란 소재를 통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깨닫게 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시선 역시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짐을 느낀다. 스크린은 세상과 나를 연결하고 가상과 현실 사이를 매개해 주지만, 우리를 몰입시키다가도 때로는 밀어내고, 충만감을 안겨주다가도 어느 순간 냉정함을 느끼게도 한다. 저자는 우리가 그러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끊임없이 유동하고 진동하는 존재임을 강조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마주하던 스크린 경험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더 나아가 독자들이 각자의 경험을 고유한 에피소드와 해석으로 확장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술의 흐름에 끌려가기보다 오히려 더 주체적이고 생산적으로 스크린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이현진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이론가로 소개되곤 하지만, 본인은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책더미에 둘러싸여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다가, 갑자기 VR 환경 속 기술을 매만지고, 세잔과 마네, 로스코의 회화와 겸재의 산수화에 빠지는 일상을 반복한다. 아티스트라 하기엔 텍스트를 너무 진지하게 읽고 있고, 이론가라 하기엔 창작 아이디어와 구현 과정에 지나치게 예민하다.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공부했으며, 공대에서 디지털미디어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예술학 미디어아트 전공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예술과 문화, 철학과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캔버스와 스크린을 통해 세계를 비추고 해석하는 글을 쓰고 있다.
지난 7년여 간 한국 고유의 유교적 철학의 세계를 몰입형 기술로 다시 읽고 새롭게 보여 주는 〈성학십도 VR〉 프로젝트를 이끌었으며, 『탠저블 필로소피』(2020), 『평행한 세계들을 껴안기: 수천 개의 작은 미래들로 본 예술의 조건』(2018) 등을 공저하고, 「열린회로와 열린 마음」(2024), 「화면을 마주함에 있어 태도가 형식이 될 때」(2024), 「After Félix González-Torres」(2017) 등 융합예술 및 현대미술에 관련된 논문을 써 왔다.